소비자는 빚더미, 가맹점은 허리 휜다
[오마이뉴스 이민선 기자]
▲ '신용카드'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나 생각해 보아야 한다.
ⓒ2007 이민선
영세 자영업자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 문제를 놓고 민주노동당과 카드업계간 신경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민생특위 위원장 노회찬 의원은 "카드사들이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를 받아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며 가맹점 수수료를 인하하기 위해 '여신전문금융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힘있는 대형할인매장이나 골프장 등에 비해서 영세 자영업자들이 지나치게 높은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기에 동일 상권 내 양극화를 조장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이에 대해 여신 금융업계에서는 "정치권의 인하압력은 카드업계를 공멸의 길로 몰고 갈수 있다"고 주장하며 정치권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대형할인매장에 비해서 영세가맹점 수수료가 높은 것이 아니라 대형가맹점 수수료가 낮은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신용카드'는 영세상인 발목 잡는 족쇄
지난 몇 년간 '신용카드'로 인하여 많은 일들이 발생했다. 99년 신용카드 활성화 정책이 있었고, 2002년에는 카드 대란이 일어났다. 그 이후 '신용불량자'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며 간간이 가맹점 수수료 문제도 뉴스에 올랐다. 그리고 이번에는 영세자영업자 카드 수수료 문제가 정치권의 화두로 등장한 것이다.
백화점 진열대에서는 화려하게 포장된 상품들이 시선을 유혹하고 TV에서는 홈쇼핑 채널이 유혹한다. 한마디로 '가지고 싶은 것'이 참 많아진 세상이다. 온갖 상품정보는 눈을 감고 있어도 귀를 통해서 들어오기도 한다. 친절하게 전화로 직접 상품 설명도 해주고 간편하게 결제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준다.
가지고 싶은 욕망을 어느 정도 해결해 준 것이 '카드'라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주민번호 불러주고 손쉽게 받아온 카드라는 것이 '도깨비방망이'처럼 신기하게 가지고 싶은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누군가 찾아와서 '도깨비방망이'를 선물해 주고 간 경우도 있다. 희한하게도 그 사람은 선물을 해 주면서 되레 고맙다고 정중하게 인사하고 간다.
"도깨비방망이를 많이 만들고 자주 써야 나라가 부강해진다"고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설득도 했다. 그 결과 우리나라는 대학생들까지 지갑 속에 '도깨비방망이'를 넣고 다니며 대책 없이 "금 나와라 뚝딱"을 외치는 도깨비 같은 나라가 돼 버렸다.
'카드'라는 것이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몇 달이 지나면 카드 값 갚으라는 독촉장이 날아오고 가끔은 기분 나쁜 목소리의 전화도 걸려온다.
말쑥한 정장 차림의 사람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옷차림에 비해서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칠기만 하다. 한마디 한마디 들을 때마다 분노가 솟구치고 절망감이 들게 된다. 그제서야, 카드가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라 '발목을 잡는 옥쇄'라는 것을 알게 된다.
도깨비방망이 받으면 부자 된다?
▲ 신용카드 결제는 모든 자영업자에게 필수가 됐다.
ⓒ2007 이민선
물건을 파는 상점에도 의무적으로 '도깨비방망이'를 받으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도깨비방망이'를 받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무시무시한 협박도 있었다. 물건이 훨씬 잘 팔리게 될 거라는 달콤한 말이 있었기에 아무런 반발 없이 수십만원 하는 기계(카드체크기)까지 들여 놓았다.
사실 국가의 지시가 없어도 기계를 설치하고 물건값으로 현금 대신 '카드'를 받아야 할 처지였다. 카드가 워낙 흔해지다보니 현금으로 결제가 이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어차피 카드를 받지 않고서는 장사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된 셈이다.
문제는 카드회사로부터 통장으로 입금되는 돈이 실제 물건값과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수수료를 제외하고 실제 입금되는 돈을 보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10% 정도 마진을 보는 상품을 팔았는데 카드회사에서 4%나 떼어가는 것이다. 그나마 빨리 입금시켜 주면 좋겠는데 그것마저도 제멋대로다. '잊을 만하면' 준다.(카드마다 다르지만 길게는 20일 정도 걸리는 곳도 있다.)
물건값을 지독하게 깎은 다음에 카드를 들이대면 난감해진다. 5% 정도 마진을 봤는데 수수료 4% 떼면 1% 남는다. 겨우 1% 남기려고 갖은 아양을 떤 것을 생각하니 슬며시 부아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그렇다고 카드를 받지 않고 현금을 달라고 할 수도 없다. 카드 결제를 거부하는 자체가 법을 어기는 것이다. 소비자가 신고하면 처벌받는다.
대형할인매장이나 백화점 같은 힘있는 회사에는 수수료를 1.5%나 2% 정도밖에 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기가 막혔다. 입만 열면 '재래시장을 살리자'고 말하는 것이 정치인들인데 어째서 이런 불평등한 구조를 뜯어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인지 분통이 터질 지경이었다.
'재래시장 살리자'는 말은 선거용 발언이었나?
외상 권하는 사회
카드가 우리에게 끼친 영향 중 바람직하지 못한 점을 소비자와 상인들 입장에서 피력해 보았다. 물론 바람직한 점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카드대란'까지 겪었다는 점을 상기할 때 카드가 최소한 서민들에게 있어서 '애물단지'임에는 틀림없다.
지난 99년, 내수 진작 방편으로 카드 사용을 국가적 차원으로 장려하기 시작했다. 그 후 카드사에서는 신용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소득도 없는 학생들에게 카드를 발급해 주었다. 그 결과 2002년에는 '카드대란'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다. 카드값을 갚지 못한 신용 불량자가 400만명을 넘어서게 되고 채권추심을 견디지 못한 신용 불량자 중에는 자살하는 이도 나왔다.
▲ 지난해 12월 서울 여의도 민주노동당 당사 앞에서 '신용카드 가맹점 수수료 인하운동' 선포식이 열렸다.
ⓒ2007 오마이뉴스 박정호
카드 수수료 분쟁도 계속 발생했다. 카드대란(신용대란)이 생기면서 엄청난 연체로 결손이 발생하자 카드사들은 결손을 메우는 방편으로 가맹점 수수료를 올리려고 했던 것. 그러나 대형 유통업체에서 '가맹점 계약 해지'라는 초강수를 두며 반발했고 그 이후 수수료를 둘러싼 불협화음은 중소 가맹점까지 확대되어 나갔다.
정부와 카드사가 손을 맞잡고 추진한 '카드 사용 장려 정책'은 그 외에도 많은 부작용을 야기했다. 그 중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한국을 '외상 권하는 사회'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국은 "외상이라면 소도 잡아 먹는다"는 속담이 있는 나라다. 이러한 사정을 몰랐을 리 만무한데 정부는 앞장서서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한 것이다. 한마디로, 정부와 카드사가 나서서 '외상' 좋아하는 심리에 부채질을 해 준 것이다.
현재 엄청나게 높게 책정된 영세 상인들에 대한 카드 수수료를 보면 고스톱판의 '뽀찌(개평)'가 생각난다. 명절날 친척들끼리 오랜만에 만나서 고스톱 한판 치고 나면 딴 사람은 없고 잃은 사람만 생긴다. 판돈은 어느새 옆에서 '뽀찌'를 받아챙긴 조카 녀석에게 가 있는 것이다. 정작 고스톱판에 끼지 않은 조카 녀석만 짭짤하게 수입을 챙긴 것이다.
정부 정책에 맞춰서 카드를 물 쓰듯 써댄 소비자들은 빚더미에 몰려있는 경우가 다반사고 가맹점인 영세 중소상인들은 계속되는 불경기에 허리가 휠 지경이다. 그에 반해 '뽀찌' 부지런히 챙긴 카드사들은 지난해에만 2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창출했다. 이 정도면 판돈 '뽀찌'가 챙겼다는 말 일리가 있지 않은가?
정치권에서 이제라도 수수료 문제에 관심을 가져준 것은 환영받아야 할 일이다. 그러나 카드 대란의 주범인 카드사가 수수료 인하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시장에 있는 판돈 과다하게 챙겼으면 스스로 토해 낼 줄도 알아야 하고 '뽀찌'로 받는 액수 낮출 줄도 알아야 한다. 그래야 환영받는 '뽀찌맨'이 될 수 있다. 카드사가 수수료 인하 정책을 통해서 소비자와 가맹점에게 환영받기 바란다.
/이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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