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파산 및 면책

[스크랩] '쩐의 전쟁'?…현실일 땐 더 가혹하다

모카시리 2007. 6. 8. 12:22
뉴스: '쩐의 전쟁'?…현실일 땐 더 가혹하다
출처: 조선일보 2007.06.08 03:34
출처 : 생활경제
글쓴이 : 조선일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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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를 다룬 드라마 ‘쩐의 전쟁’에서 주인공 금나라(박신양 분)는 사채업자 독고철(신구 분)의 지시로 상가(喪家)에 찾아가 빚을 받아낸다. 금나라는 채무자인 고인(故人)의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반지를 빼내는데, 명백한 불법이다. 금나라가 유족에게 들이댄 ‘신체 포기 각서’도 마찬가지로 법적 효력이 없는 불법 문서다.

그러나 대부업체의 불법 추심(연체 빚을 받아내는 것)행위가 드라마 속 얘기만은 아니다. 6일 본지가 입수한 일본계 대부업체 R사의 내부 매뉴얼 ‘지부장(支部長) 능력 향상 과정’을 보면 합법과 불법의 경계를 교묘히 넘나드는 대부업체의 추심 수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다. 이 매뉴얼은 R사 지부장급 간부 직원 30여명을 대상으로 한 내부 교육 자료다.

◆전화는 입금 보름 전부터

R사의 매뉴얼은 돈을 빌린 지 15일째 되는 날부터 전화를 시작하도록 지시하고 있다. 이른바 ‘해피콜(Happy Call)’. 처음 전화는 직장으로 거는 것이 원칙이다. 아직 연체 상태는 아니기 때문에 목소리는 정중해야 한다고 돼 있다.




“대출받으신 뒤 불편사항이나 건의사항을 듣기 위해서 전화 드렸습니다”라고 전화를 시작해 “보름 뒤 첫 이자 납기일에 잊지 마시고 꼭 신경쓰셔서 제 날짜에 입금해 주십시오”로 끝내야 한다고 매뉴얼은 적고 있다. 첫 이자를 입금하기 사흘 전, 그리고 입금해야 하는 날 어김없이 ‘해피콜’을 걸어 상환을 압박하라고 되어 있다.

연체가 시작되면 사정은 달라진다. 연체 이틀 뒤 “오늘 연체자 리스트에 올라왔습니다”로 시작되는 전화를 걸고, 연체 나흘째가 되면 “5만원 이상 닷새 이상 연체는 신용정보집중기관에 등록되어 카드사용 일시 정지 등의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는 경고를 곁들여야 한다고 되어 있다.

매뉴얼은 연체가 길어질 경우 전화 목소리도 단호하게 바꾸고, 대응방법도 다음과 같이 달리 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①채무자에게 5일 이내로 입금일자를 확약받되, 채무자가 돈을 넣겠다고 하는 날짜보다 반드시 하루나 이틀 앞당길 것(연체 6일째).

②주소지에 독촉장을 보내겠다고 말하고 독촉장이 발송되면 주변에서 알 수 있으니 꼭 본인이 신경써서 수령해야 한다고 덧붙이기(연체 10일째).

③주소지로 불시에 방문하겠다고 말한 뒤 주변에서 눈치챌 수 있다고 덧붙이기(연체 15일째).

④독촉장을 들고 방문하겠다고 말한 날짜보다 반드시 하루 정도 빨리 불시에 찾아갈 것(연체 60일째).

B대부업체 관계자는 “아침에 눈을 떠 잠들 때까지 정확히 같은 시간에 하루 7번 정도 독촉 전화를 받으면 웬만한 채무자는 사흘을 견디지 못하고 돈을 갚는다”고 말했다.






◆가족·친구를 공략하라

대부업법·시행령은 ‘채무자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채무 사실을 알리는 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다. 위반하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나 6개월 이하 영업 정지를 받는다.

하지만 R사 매뉴얼은 주변 사람들에게 연체 사실을 알리겠다고 압박하도록 적고 있다. ‘배우자나 가족이 알지 못하는 대출이 있을 수 있으니 전화를 걸기보다는 연체 사실을 주변에 알릴 수 있는 전보를 발송하라’, ‘대학생의 경우 학교 홈페이지에 연체 사실을 올리겠다는 음성 메시지를 남겨라’, ‘직장에서 일정한 지위에 있는 사람은 직장을 집중 공략하라’…. R사 매뉴얼에 있는 채권 추심 방법은 온통 불법투성이다.

R사 매뉴얼은 “젊은 채무자의 경우 ‘싸이월드’를 공략하라”고 적고 있다. 이에 대해 C대부업체 관계자는 “싸이월드의 학교 친구 찾기를 이용해 동창의 정보를 확인한 후 동창에게 전화를 걸어 정보를 빼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 ○○○인데, 나 잘 기억 안 나지? 고등학교 때 10반이었는데, 반갑다. 근데 너 ×××(채무자) 요즘 뭐 하는지 아냐? 연락이 잘 안 되네.” 이렇게 전화를 걸면 채무자의 동창은 채무자의 근황에 대해 아는 대로 알려 준다는 것이다.






R사 매뉴얼은 “가족 중에 수입원이 누구인지 파악하고, 가족의 근무처를 반드시 알아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물론 이것 역시 불법이다. C대부업체 관계자는 “설문조사를 위장해 채무자의 집에 전화를 건 뒤 채무자 가족의 인적사항이나 직장을 빼내는 것도 고전적인 수법”이라며 “경품이 걸려 있는 설문조사라는 것을 강조하면 쉽게 넘어온다”고 말했다.

R사의 매뉴얼 중 일부분은 한 국책은행 자회사의 자료까지 인용하고 있었다. 대부업체든 제도권 금융회사든 불법적으로 빚을 받아내는 수법에 별 차이가 없다는 이야기다. D대부업체 관계자는 “더 끈질기고 악랄한 채권 추심 노하우는 교재가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수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R사 관계자는 “본사에 3~4명 규모의 고객만족팀과 윤리경영실을 운영하고 있고 불법 추심이 발견되면 내부적으로 중징계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김정훈 기자 run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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