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생계형 위장 이혼’ 취소 판결

모카시리 2008. 4. 7. 11:56
[동아일보]
"부부 한쪽이 속일 의도 분명하면 합의 했어도 무효"
서울가정법원, 판례 뒤집어
같이 살면서도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법적으로 협의이혼한 부부에게 '이혼 취소' 판결이 내려졌다. 최근 이 같은 '생계형 위장(僞裝)이혼'은 방송 드라마로 다뤄질 만큼 늘어나고 있어 이번 판결은 법조계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다.

S 씨는 지난해 2월 "이혼을 하면 정부로부터 기초생활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며 폐질환을 앓는 남편 P 씨를 설득해 위장이혼을 했다. 그러나 S 씨는 이혼 후 3개월 정도 P 씨와 같이 살다 뚜렷한 이유 없이 집을 나가 들어오지 않았다. 장기간 투병생활로 혼자서는 두 자녀를 키울 수 없게 된 P 씨가 S 씨를 상대로 이혼 무효 소송을 냈다.

법원은 고심 끝에 남편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가정법원 가사10단독 최정인 판사는 "기초생활보장을 위해 부부가 위장이혼을 했더라도 이혼 당시 약간의 불화가 있었고 이혼 후 함께 산 기간(3개 월)이 짧은 점 등을 볼 때 아내는 실제로 헤어질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편이 아내의 의도를 모른 채 협의이혼을 했기 때문에 이혼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이혼 무효 소송에서 진 S 씨가 항소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소재 파악이 안 돼 소송 내용이 법원 게시판에 공시 송달된 상태.

최 판사는 "협의이혼을 취소하거나 무효화한 판결은 실무적으로 극히 드문 사례"라고 말했다.

위장이혼이더라도 부부가 합의를 했다면 "이혼은 유효하다"는 게 지금까지의 주된 판례였다.
1998년 두 자녀와 아내를 미국에 유학 보낸 전직 경찰 K(66) 씨. 2년 뒤 정년퇴직을 하고 미국으로 건너갔지만 고령의 무직자라는 이유로 취업 비자를 받지 못했다. 이 부부는 위장이혼을 하고 아내가 미국 시민권자와 위장 결혼하는 방법으로 영주권을 얻기로 했다.

그러나 이혼 후 아내는 돌변했다. 한국의 집도 몰래 팔고 K 씨와 연락도 끊었다. K 씨는 "위장이혼을 취소해 달라"며 소송을 냈다.

2004년 4월 당시 재판부는 "부부의 합의에 따라 협의이혼한 이상 다른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양자 간에 이혼의 의사가 없다고 할 수 없어 이혼신고는 유효하다"고 판시했다.

올해 2월에도 서울가정법원은 아내 A(70) 씨가 "미국 영주권을 취득할 목적으로 한 가장이혼은 무효"라며 남편(64)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같은 이유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취업 등을 위한 '위장결혼'은 무효지만 경제적 이유로 합의된 '위장이혼'은 인정한다는 것이 기존 판례였는데 이번 P 씨에 대한 판결은 이를 뒤집는 결론"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부 한쪽이 속일 의도가 분명하면 합의된 위장이혼이라도 무효라는 판단으로, 판결이 대법원에서 확정될 경우 유사한 다른 재판에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