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테헤란로 비정규직 아줌마들 이야기...
테헤란로 비정규직 아줌마들 이야기...
"르네상스 호텔, 불법파견에 해고까지..."
벌써 464 일째. 거리에 처음 나섰던 기억마저 흐릿하게 느껴지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지난 해 겨울은 이들에게 너무도 견디기 힘든 시기였을지도 모릅니다. 차가운 시멘트바닥에 앉아서 뼛속을 후비는 칼바람을 맞으며, 테헤란로에 뿌렸던 고통의 눈물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서울 강남 테헤란로 거리에는 르네상스라는 호텔이 있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괜찮은 호텔 같습니다. 그런데 이 호텔에 롬메이드로 일했던 아줌마들이 이해할 수 없는 구조조정으로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내몰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호텔에 일했던 함소란 씨는 1988년 호텔이 개관하던 해에 정규직으로 입사하여 룸메이드로 일했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지만 그래도 14년 동안 묵묵히 일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는 2001년 12월 경영악화를 내세우며 대부분 여성들이 일했던 부서만을 골라서 비정규직으로 전환시켰다고 했습니다. 처음엔 그저 운명이려니 생각하며 받아들이고 일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회사는 경영악화를 내세워 자신들을 비정규직으로 전환시켰는데, 어렵기는커녕 남은 직원들에게 월급인상에 없던 수당까지 만들어 주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터무니없이 얇아진 월급과 관리직원들의 견디기 힘든 비인격적인 차별과 대우였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생활비도 빠듯한 90만 원 정도의 월급이 전부였습니다. 생활은 궁핍해지기 시작했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현실은 너무도 고통스럽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딸아이가 대학에 들어가자 생활은 더욱 힘들어졌어요. 아무리 아르바이트를 하여도 ,턱도 없이 비싼 등록금을 제 월급으로 감당하기는 너무 어렵더라구요.”
그는 은행 융자를 받아 등록금을 마련했다가 눈덩이처럼 커지는 빚을 감당하기 어려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집살 때 빌린 대출금 이자도 내지 못해 현재 경매위기에 놓여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빈곤층으로 전락하는 것은 정말 순식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 길거리에서 보내야 했던 464일... 낡은 방송차에 반쯤 떨어져나간 확성기가
이들의 고통과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호텔측은 이 같은 문제가 계속되자 문제해결에 나선 것이 아니라 2005년 12월 30일경에 이들을 일방적으로 전원 해고하였던 것입니다. 이들의 고통은 경제적, 정신적으로 더더욱 가중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였습니다.
노부모를 모셨던 함소란 씨는 하루 끼니조차 걱정해야만 하는 날들이 너무도 많았다고 했습니다. 냉장고와 쌀통은 바닥나기 일쑤였고, 매일 같이 늘어나는 것은 약봉지뿐이었다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상황이 이들의 처지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에게 또 다른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난 해 해고된 조합원들은 호텔측의 부당함을 검찰에 기소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노동부의 불법판정과는 다르게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리면서 문제는 더욱 어렵게 되어있었습니다.
지난 해 비정규직 법안이 통과되면서 노동계에서 우려했던 부분이 현실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지난 2004년 제기한 ‘체불임금 지급소송’ 결과에 대해서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었습니다.
이날 현장에서 만났던 이옥순 노조 위원장은 “노동부에서 불법판정을 받고도 검찰에서 무협의 처분을 내린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면서 “법원의 결과가 2년 넘게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은 정당한 싸움을 포기하기를 강요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어려운 싸움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이 있다고 했습니다. 결코 포기할 수 없기에 매일 아침 10시면 호텔 정문 앞에 나서야 했습니다. 짝수 날에는 남아 있는 사람들과 집회를 열고, 홀수 날에는 세월만큼이나 낡아버린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벌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또 지난해에는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과 같이 노숙투쟁에도 참여했다고 말했습니다. 함소란 씨는 그 때를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처음으로 광화문 지하도에서 노숙을 하였는데 그 차가운 바닥에 비닐 하나 깔고 모포도 없이 잠을 청했던 기억들이 선하다. 신문지 하나가 그렇게 포근했던 적이 없었다”
이날 한 조합원은 핸드폰 문자 메시지를 보여주면서 “핸드폰 요금도 내지 못해서 받는 전화만 간신히 통화하고 있는데 하루에도 몇 개씩 문제메세지로 ‘돈 빌려준다’, ‘대출해준다’, ‘무이자있다’는 문자는 왜 이렇게 많이 오는지 알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어쩌면 이들의 안타까운 호소는 낡은 방송 차의 확성기처럼 깨져버려 세상에는 들리지 않을 수 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통과 시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비정규직의 문제는 우리사회의 모순 된 현실이기도 합니다. 지난 해 비정규직 보호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하지만 르네스상스 호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취재하면서 느꼈던 부분은 비정규직 보호법이 우리사회에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