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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현대판 '유전무죄 유권무죄'
모카시리
2007. 3. 9. 17:37
<신문로>신판 유전무죄, 유권무죄 |
2007-03-07 오후 4:32:57 게재 |
신판 유전무죄, 유권무죄 임 지 봉 (서강대 교수·헌법학)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있다. 돈이 있고 없음이 유무죄에 절대적 영향을 끼치더라는 우리 서민들의 자조어린 탄식이다. 아무리 자본주의사회라지만, 죄의 유무가 돈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면 이런 사법부에 국민들이 신뢰를 보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런 사법시스템에 정의가 살아있다고 말하기는 힘들 것이다. 최근 구속집행정지와 형집행정지의 잘못된 운용과 형사재판의 양형에 피해자와의 금전적 합의가 지나치게 큰 영향을 미치는 현상이 나타나 ‘신판 유전무죄’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 ‘신판 유전무죄’는 권력을 가졌느냐가 죄의 유무에 영향을 미치는 ‘유권무죄(有權無罪)’까지 유전무죄에 결합된 양상을 띠고 있어 더 심각하다. 원래 구속집행정지란 법원이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피고인의 주거를 제한하는 등의 방법으로 구속의 집행을 정지시킬 수 있는 제도다. 또한, 형집행정지란 형을 사는 재소자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형집행으로 재소자의 건강이 현저히 해쳐지거나 생명이 위독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검사가 형의 집행을 일시 정지시켜주는 제도이다. 둘다 형사소송법에 근거규정을 두고 있다. 문제는 법원이나 검찰이 두 제도를 운용하는 과정에서, 원래 구속자나 재소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도입된 이 제도들이 재벌총수나 거물급 정치인 등 특권층의 합법적 탈옥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는 점이다. 법적 기준 구체화 서둘러야 최근 당뇨병을 앓고 있던 한 재소자가 화상으로 인한 욕창으로 형집행정지를 신청했으나 이 신청이 상당기간 받아들여지지 않아 뒤늦은 수술로 재소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가족이 주장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특권층의 경우와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들 특권층은 구속집행정지나 형집행정지 신청에 대부분 전관출신 변호사를 고용하고 이 때 비싼 수임료가 오고간다는 것은 더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미 우리는 많은 재벌총수나 거물급 정치인이 형집행정지로 병원 병실이나 자택으로 풀려나 있다가 결국은 사면을 받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오지 않았던가. 실로 ‘신판 유전무죄, 유권무죄’라 부르지 않을 수 없는 현상이다. 둘째, 법원이 형사사건에서 피해자와의 금전적 합의를 양형에 지나치게 고려하는 최근의 현상도 이러한 유전무죄를 더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돈없는 사람은 합의할 돈이 없어 무거운 형을 선고받고 돈있는 사람은 같은 범죄를 범하고도 돈으로 합의해 가벼운 형으로 처벌받게 되기 때문이다. 가벼운 형을 돈을 주고 사는 셈이다. 원래 민사적 불법행위는 피해자에 대한 금전적 손해배상으로 해결가능한 것이지만, 형사적 범죄는 반사회적 악행에 대한 국가적 처벌과 처벌을 통한 경고, 또 그것을 통한 사회방위를 중요한 목적으로 한다. 금전적 합의를 양형에 지나치게 고려하는 것은 형사사건을 민사사건처럼 돈으로 해결하게 하면서 형사범죄에 대한 처벌의 중요성을 떨어뜨리고 범죄로부터의 사회방위 역할을 약화시킬 수 있어 문제다. 죄를 지은 사람은 정당한 죄값을 치르게 한다는 것이 형사사법의 정의일진대 금전적 합의의 지나친 양형고려는 이러한 형사사법적 정의를 왜곡시킬 수 있어 위험하다. 그러면, 이러한 ‘신판 유전무죄’를 막을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구속집행정지 등의 요건을 형사소송법에 지금보다 더 상세히 규정하여 법원이나 검찰의 재량 여지를 줄이는 법적 기준의 구체화 작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또한, 형집행정지의 경우 그 결정을 위한 위원회를 만들고 의사나 시민을 대표하는 전문가들을 위원으로 참여시켜 이 위원회의 객관적 의견에 따라 검사가 형집행정지를 결정하게 하는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 돈과 사법은 무관해야 실제로 작년에 창원지검 진주지청이 전국 최초로 ‘시민참여형 집행정지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이러한 시도를 함으로써 긍정적 평가를 받은 전례도 있다. 금전적 합의의 지나친 양형 참작과 관련해서는, 많은 외국의 경우처럼 범죄 적발 후의 금전적 합의는 양형 고려에서 아예 배제해 버리는 방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대안의 모색과 실천의 노력이 하루빨리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국민들의 사법불신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돈과 사법은 같이 가선 안 된다. 무관해야 한다. Copyright ⓒThe Naeil News. All rights reserved. |